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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1-10 17:09
철학 수업, ‘생각’을 열어주다
 글쓴이 : 정윤경
조회 : 540  
철학 수업, ‘생각’을 열어주다

아이들과 철학 수업을 하다보면 자주 듣게 되는 말들이 있습니다. ‘선생님. 저 그런 건 생각 안 해봤는데요.’ ‘아무 생각도 없어요.’ ‘옆에 앉은 친구랑 제 생각이랑 똑같아요.’ 아이들이 이렇게 대답을 하곤 할 때면 말문이 턱, 막히고는 합니다. 그리고 이어 재빨리 되묻습니다. 정말 아무런 생각이 없니? 진짜 옆에 앉은 친구랑 생각이 똑같니? 진지하게 다시 질문하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보따리를 내어놓듯 주섬주섬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그걸 가만히 경청하다보면 꽤 놀라운 발견들을 하곤 합니다. 사실 아이들은 아무 생각이 없는 게 아니라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뿐이고, 입 밖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순간 아주 미묘한 차이일지라도 옆의 친구와 생각이 다르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3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벌>에 관련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글의 요지는 벌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의 조화가 필요하며, 따라서 자기 스스로 벌을 내리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저지른 잘못의 정도는 내가 제일 잘 알기 때문입니다. 어김없이 돌아온 질문하기 시간에서, 아이들은 또다시 연필을 빙빙 굴리며 깊은 고민에 빠져있습니다. 종종 어떤 친구들은 앞서 했던 말들을 투정처럼 되풀이하기도 합니다. ‘이런 주제는 생각 안 해봤어요.’ 하지만 끈질기게 질문하고 기다리고 나면 이번에도 역시 아이들은 무척 흥미로운 질문들을 뽑아냅니다. ‘모든 벌을 스스로 주는 게 바람직할까?’ ‘자기 자신에게 벌을 내리는 게 가능할까?’ 같은 질문들은 충분히 토의를 해볼 만 한 멋진 질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 아이들은 질문을 하고 그것에 관련한 맹렬한 토의를 하는 과정 속에서 더 나은 생각들을 찾아내는 모습을 보입니다. 아무 생각이 없던 아이에서 주체적이며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아이로 한 걸음 다가간 것입니다.

최근 우리 생활의 다양한 영역에서 인공지능이 맹활약을 보내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이세돌과 인공지능 사이에서 벌어진 바둑대결은 세간의 관심이었습니다.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인공지능 사회에서 우리는 편리함을 얻는 대신 생각하는 시간을 잃어버리곤 합니다. 이미 정해진 답만을 쫓아가려는 경향이 커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원하는 대로, 바라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자잘한 문제에서부터 가끔은 일생일대의 커다란 문제를 직면하기도 합니다. 철학수업이 중요한 이유는 이 지점에 있습니다. 철학수업은 끊임없이 질문하는 과정을 통해 아이들에게 생각의 중요성을 길러주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겐 생각하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더 좋은 생각을 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아이들에게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질문하고, 또 이런 것들을 친구와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합니다. 철학교육은 아이들에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마련하고 아이들이 보다 나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합니다. 생각할 수 있는 힘이야말로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며, 획일화된 교육에 치우쳐있는 현대사회에서 더없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