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커뮤니티 > 철학 에세이
 
작성일 : 19-02-07 18:22
드라마 스카이 캐슬과 탐구 공동체
 글쓴이 : 정윤경
조회 : 624  
* 스카이 캐슬과 탐구 공동체

최근 연일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만든 드라마가 있다. 이름하여 ‘스카이 캐슬.’ 남녀노소, 나이불문 모든 이들을 열광케 했다던 이 드라마는 우리나라 사교육과 입시 문제에 대해서 일상적이지만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 주남대학교. 스카이 캐슬은 주남대학교 초대 이사장이 지은 석조저택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이 스카이 캐슬에 사는 사람들로 말할 것 같으면, 대학병원 의사들이나 로스쿨의 가족들로 이른바 최상위 계층이다. 등장인물 중 하나인 차교수의 말을 빌리면 “피라미드 꼭대기”에 사는 인물들인 것이다. 혹은 피라미드 꼭대기를 인생의 최대 목표로 삼기도 한다.

스카이 캐슬에는 보통 드라마에서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군상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수임과 승혜 등, 스카이 캐슬의 교육을 꼬집는 몇 인물들을 제외하고는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자식을 반드시 좋은 대학에 보내겠다는, 또는 반드시 좋은 대학에 가고야 말겠다는 과도한 교육열. 큰딸인 예서를 서울의대에 보낼 수만 있다면 물불을 안 가리는 엄마 미향을 대표하여 대다수의 인물들이 교육에 매달린다. 죽기 아니면 살기 식으로, 마치 서울의대 아니면 죽는 것처럼. 사활을 걸고 일류대학에 가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엄마 미향은 딸 예서를 위해서라면 못할 짓이 없다. 하루아침에 자살해버린 영재 엄마의 죽음 이면에 예서의 코디네이터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에게 수십억을 갖다 바친다. 그러면서 말한다. “선생님. 우리 예서 서울의대 꼭 가야해요.” 이 서울의대 라는 게 대체 뭔지. 일류대학 앞에서 인간으로서 최소한 지녀야 할 양심과 도덕성마저도 쉬이 무너진다.

미향을 포함해 스카이 캐슬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가만 살펴보면, 그들은 지극히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른다. 예를 들어, 예서가 있다. 스카이 캐슬에는 정기적인 독서 토론이 열린다. 각자 책을 읽고 한데 모여서 책의 내용에 대해 토의한다. 언뜻 보면 철학수업에서 진행하고 있는 수업 방식과 비슷하다. 하지만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완전히 다르다.

독서 토론은 로스쿨 교수인 차교수와 예서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예서가 자기주장을 말하면 다른 애들은 입을 꽉 닫고 대답하길 머뭇거린다. 혹시라도 예서와 다른 의견을 냈다간 면박이 날라 오기 때문이다. 토론이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상대방과 의견을 나누기 위해 진행하는 것이다. 내 의견을 말하고, 또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아이들은 더 좋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예서와 다른 아이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그러니 철학수업에서 말하는 ‘더 좋은 생각’이라는 게 피어날 수 없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신의 의견을 수정, 보완하는 과정 자체를 완벽히 생략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교육에서 제대로 된 토론이 부재하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자칫하면 예서와 같이 아집만 가득한 아이들이 생겨날 수 있다. 자기주장만 옳다고 내세우는 아이가 무슨 수로 건강한 인격을 가질 수 있을까. 요즘은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게 더 중요한 시대다. 말 잘하는 아이들보다 더욱 필요한 것은 잘 듣는 아이들이다. 철학수업은 이 점을 놓치지 않는다. 수업 내내 ‘다른 친구들이 말하면 잘 들으라.’고 아이들을 격려한다. 또한 듣는 데 서투른 아이들에겐 친구들이 말하는 내용을 필기하라고 알려준다. 토론 중에 친구들이 말한 내용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절차도 거친다. “친구가 뭐라고 말했어? 이해 안 가는 내용이 있으면 다시 질문해봐.”라며 끊임없이 북돋아준다. 철학수업을 제대로 배운 아이들은 친구들의 의견을 경청할 줄 안다.

철학수업에서 아이들은 원형으로 둘러 앉아 각자 생각들을 공유한다. 또한 질문을 만들어내고 그 질문에 대해 서로 토론한다. 철학교육에선 이것을 탐구공동체라고 부른다. 탐구공동체에서 아이들은 상대방을 합리적 존재로 인식하고 배려적인 행동을 한다. 내 의견이 존중받기 위해선 친구들의 의견 역시 존중받아야 함을 절실히 느낀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사고와 반성의 순간을 경험한다. 내 의견이 친구들과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하며,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만약 예서가 무늬만 토론이 아닌, 올바른 탐구공동체를 따랐다면 어떻게 됐을까. 혹은 미향을 포함한 스카이 캐슬의 사람들이 유년시절 철학수업을 거쳤다면? 아마도 일류대학만을 삶의 유일무이한 목표로 삼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그들에게 닥친 여러 가지 위기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귀담았을 것이다. 미향은 ‘코디를 멀리하라.’라는 수임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코디네이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꺾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로 나쁜 일들이 우후죽순 일어난다. 따라서 절로 아쉬움이 남는다. ‘미향이 수임의 말을 귀담아 들었더라면.’ 혹은 ‘예서가 친구들의 말을 존중할 줄 알았더라면.’이라는 생각들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끊임없이 떠오른다.

우리 교육 현실에서, 아이들이 토론에 투자하는 시간은 절대적으로 적다. 스카이 캐슬까진 아니더라도 대다수의 아이들이 국영수에 쫓긴다. 좋은 대학을 가야만 좋은 어른이 되는 줄 안다. 이런 상황에서 비판적•창의적•배려적 사고의 세 박자를 맞추기란 무척 어렵다. 특히 남을 존중하는 배려적 사고를 기르기란 굉장히 힘들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스카이 캐슬처럼 아이들이 병들지 않기 위해 우리는 올바른 토론 문화를 자리 잡아야만 한다. 아마도 어린이 철학 교육이 그 출발점에 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