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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1-23 12:36
[중고등부] [특강후기 및 학생글] 중학교 1학년 <사피엔스>(유발 하라리 지음) 읽기 특강
 글쓴이 : 박흥택
조회 : 95  
[특강후기] 박흥택 철학교사
지난 여름방학 때 비공식적으로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 읽기 특강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중학교 1학기 과학탐구토론대회 선정도서 중 하나라서 읽어보았는데, 단순히 과학적인 내용만이 아닌 인문학적인 내용이 많아서 아이들과 함께 읽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담당하고 있는 반의 부모님들께 제안을 드렸더니 분량이 많아 부담은 되지만 아이들에게 좋은 기회라고 기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게 5명의 아이들과 함께 <호모 데우스>를 철학수업의 방법으로 읽었고, 이제 <사피엔스>를 공식적인 특강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진행했습니다.

<호모 데우스> 읽기 특강에 참여했던 3명의 아이들과 새로운 2명의 아이들이 5일 간 도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피엔스>는 586쪽짜리 책입니다. 미리 읽도록 당부를 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지요. 결국 특강기간에 읽다보니 새벽까지 읽고 특강을 한 아이도 있었습니다. 5일차 수업 때 "이제 잠을 잘 수 있게 되었어요."라며 웃는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대견했습니다. <사피엔스>는 많이 알려진 책이라 많은 집에서 구매하여 책꽂이에 진열하여 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책을 펼쳐서 끝까지 읽은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요? 이 두꺼운 책을 끝까지 꼼꼼하게 읽은 아이들을 칭찬합니다.

또한 철학수업에서는 늘 그러하듯 이해한 내용이나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들을 가지고 와야 합니다. 이해한 내용은 자신이 이해한 바를 설명하고 아이들에게 질문을 받고 답변을 합니다. 그리고 그 내용에서 탐구하고자 하는 바를 질문으로 제시합니다. (이들 질문을 특강 일차별로 정리하여 아래에 올려드렸습니다.) 탐구질문에 대한 자신의 주장과 이유를 마련하여 아이들에게 제시하고 담금질하는 과정이 토론으로 이어집니다. 이해되지 않은 내용은 책을 펼쳐서 해당 페이지를 살펴보는데, 대부분의 경우 앞의 내용부터 살펴보아야 했습니다. 이 경우에도 이해한 후에 탐구질문과 그에 대한 주장과 이유를 제시합니다. 정규수업이든 특강수업이든 철학수업을 위해 읽는 책은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찾은 내용을 아이들에게 설명해야 하므로 집중해서 읽고 생각을 많이 해야 합니다.

3시간이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인데도 충분한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많이 부족했습니다. 그럼에도 생각을 다듬고 자신과 관련된 내용들을 찾아내는 모습에서 뿌듯함을 보았습니다. 같은 책을 읽고도 다양한 생각들을 찾아낼 수 있어서 내용적으로 풍부한 특강이었습니다. 5일간 강행군을 함께 해준 아이들에게, 그리고 아이들이 특강에 잘 참여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부모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특강을 진행하며 아이들의 글에서 새로운 생각, 의미 있는 생각을 발견할 때 철학교사로서 기쁨을 느낍니다. 그 중에 한 편의 글을 소개합니다.         


[학생글] 김연서(문영여자중학교 1학년)

"사피엔스가 행복하려면 생화학적 물질을 변화시키면 되는 걸까?"

"인간의 정신세계와 감정세계는 생화학적 체제의 지배를 받는다."라고 생물학자들은 말했다. 달리 표현하면 인간의 행복은 생화학적 현상이다. 행복은 신경, 뉴런, 시냅스 그리고 세로토닌, 도파민, 옥시토신 등의 다양한 생화학적 물질에 의해 결정된다. 복권에 당첨되거나 집을 사거나 승진을 하거나 진정한 사랑을 찾거나 하는 일로 행복해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닌 신체 내부의 쾌락적인 감각이다. 방금 복권에 당첨되거나 새로운 연인을 찾아서 기뻐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돈이나 연인에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다. 몸 속에 있는 다양한 호르몬과 뇌의 여러 부위에서 오가는 전기신호의 폭풍에 반응하는 것이다. 이렇게 행복은 생화학적 현상으로 인해 생긴다.

그렇다면, 사피엔스가 행복하려면 생화학적 물질을 변화시키면 되는 걸까?
나는 생화학적 물질을 변화시킨다고 해서 사피엔스가 행복해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생물학자들이 말한대로 사피엔스의 행복이 생화학적 현상이라면 음식을 섭취할 때는 항상 행복해야 한다. 우리 몸에 영양분들이 공급되어 배가 부르고 에너지가 생겨 생화학적 현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음식을 섭취할 때 항상 행복해야 하지만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항상 행복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음식을 섭취할 때 행복해지는가 안 행복해지는가에 대해 제일 중요한 것은 '같이 음식을 먹는 사람'이다. 내가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을지라도 내 반대편에서 음식을 먹는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냐, 싫어하는 사람이냐에 따라 행복한지 안 행복한지가 결정된다. 나와 같이 먹고 있는 이 사람이 남자친구라면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나와 함께 먹고 있는 이 사람이 나와 앙숙 사이라면 음식이 아무리 맛있더라도 아무 맛도 안 느껴지고 전혀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사피엔스는 생화학적 물질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만족시켜야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밥을 먹는데 만족이 아닌 영양분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먹게 된다면 내가 밥을 먹을 때마다 배를 충족시키기 위해 먹어서 점점 내 위가 늘어날 것이다. 위가 늘어나면 그 다음에 영양분을 충족시킬 때는 점점 더 많이 먹어야 한다. 하지만 '만족'을 한다면 많이 먹지 않아도 행복해질 수 있다. 조금 먹는 것에 대해 만족한다면 금방 배가 불러지고 에너지가 생겨 행복해진다. 나는 영양분을 충족시켜야 행복해지는 것보다 만족해서 행복해지는 방법이 더욱 좋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생화학적 물질을 변화시킨다고 해서 사피엔스가 행복해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