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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1-24 11:27
[초등부] 수월성 수업 <역사 탐구> 중에서
 글쓴이 : 황신자
조회 : 67  

이번 학기에 5학년 아이들과 한국사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근현대사로 넘어오면서 역사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도 한껏 고조되고 있습니다. 아래 소개하는 글은 한일병합 당시의 나라안 사정, 국제 정세, 강대국들의 침략행위에 대해 배우면서 우리 자신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을 아이들이 토론 후 글로 써본 내용입니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한 이유를 분석해 보자

 

1910년 조선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다. 고종이 즉위한 1863년 이후로 조금씩 나라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하던 중 많은 난이 일어나고 다른 강대국들의 침입도 받고 일본에게 을사늑약으로 외교권도 박탈당했다. 그리고 고종이 일본에 의해 강제 퇴위를 당하고 3년 뒤 우리나라는 일본의 손에 넘어갔다.

이 과정들을 겪고 일본에 넘어간 것을 경술국치라고 한다. 우리나라가 경술국치를 당한 이유를 분석해보면 여러 가지가 있다.

첫 번째 고종이 즉위하고 흥선대원군이 통치를 할 때 흥선대원군이 다른 나라로부터 나라의 문을 걸어잠근다는 뜻의 쇄국정치를 함으로써 우리나라는 우물 안 개구리 신세가 되었고 그로 인해 다른 나라의 발달한 문화와 문물을 받아들이지 못하여 일본은 총을 들고 싸울 때 우리나라는 칼과 화살로 싸운 셈이다. 다른 나라의 발달한 문화와 문물을 받아들였다면 일본이 총을 들고 싸울 때 우리도 조금 더 좋은 무기로 대항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두 번째로 나라의 기본적인 조건인 군사력과 외교력이 약한 점이다. 고종이 즉위하고 난 뒤부터 나라가 약해져서 군사력은 물론이고 쇄국정치로 외교력도 약해져서 제대로 된 군사로 대응할 수도, 다른 나라에게 제대로 된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심지어 을사늑약으로 일본에게 우리의 외교권을 아예 뺏겼다.

세 번째는 쇄국정치를 해도 그 동안 다른 나라에 대응할 힘을 길렀다면 모를까 우리는 제대로 된 준비를 안했다.

마지막으로 이완용 같은 친일파들 때문이다. 친일파로 인해 몇 개의 불평등 조약을 맺었고 그로 인해 우리나라는 일본의 손에 넘어갔다.

이 네 가지의 이유만 보완했어도 우리는 자주국으로 성장하고 일제강점기라는 아픈 역사도 없었을 것이다.

- 김태원 글 -

 

일단 조선 후기에 군사력 등등이 약해져 점점 일본의 지배와 간섭을 받기 시작했다. 그래서 1910년에 아예 나라를 빼앗기는 국권 피탈을 당했다.

먼저 1910년 조선이 경술국치를 당한 이유는 나라의 군사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나라가 우선 강해지려면 그 만큼의 힘이 센 군사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는 일본과 맞서 싸울만큼 군사력이 세지 못했다. 그래서 조선이 경술국치를 당한 이유 중 하나이다.

또 하나는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이 박탈됐기에 그렇다. 일본은 서양의 문물을 잘 받아들였다. 하지만 조선은 서양의 문물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일본은 서양의 문물을 잘 받아들인 것에 비해 조선은 받아들이지 못했기에 조선은 성장하지 못했다.

조선은 일본과 불평등한 강화도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면서 계속 우리나라는 일본에게 힘을 뺏기고 있었다. 하지만 경술국치를 당하기 전까지는 그래도 시간이 꽤 있었다. 그런데도 나라의 정부는 적절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일본에게 대응도 하지 못했다. 만약 우리 조선이 일본에게 당한 것에 대한 대응을 제대로 했다면 그래도 더 나은 상황으로 변화했을 것이다.

매국노들 때문에도 그렇다. 그때에는 나라를 위해 싸운 사람들이 진짜 많았다. 예를 들어 전봉준 같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다 일본을 선택한 매국노들 때문에 죽었기 때문이다. 또 일본은 자신들의 명령에 잘 따르는 사람에게 뭘 더 주거나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렇게 경술국치를 당한 것도 이러한 것들 때문에도 그렇다.

마지막으로는 우리나라 전체의 잘못도 있다. 정부 뿐만 아니라 우리의 백성들도 아무런 대응이 없었다. 나라가 강하려면 백성들도 똑똑해야 하는데 인재가 나오지 않았다.

위의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조선이 경술국치를 당했다고 생각한다.

- 류지민 글 -